기자 호칭으로 본 미국의 저널리즘
미국 언론계의 기자 호칭을 알면, 미국 언론의 뉴스 생산 방식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기자들을 부르는 호칭은 대락 다음과 같습니다. 도움이 될까 하여 논설실에서 함께 나눕니다. (우리 영문 명함 작성에도 참고가 될 듯 ^&^)
-저널리스트(Journalist) 언론인 일반
-리포터(Reporter) (다른 언론인 직종과 구분하여) 기자
-제너럴 어사인먼트 리포터(General assignment reporter)
딱히 정해놓은 담당영역 없이 세상 모든 것을 취재하는 기자. 이 역할을 신참 기자(cub reporter)가 한다. 이들은 데스크의 '지시'에 따라 취재 주제를 정하여 움직인다. 주어진 주제가 없으면 자기가 쓰고 싶은 기사를 직접 캐내야 한다. 그러니까 입사 직후 수습 기자 시절부터 경찰서 등의 출입처를 부여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 신참은 말 그대로 '온 세상의 맨땅에 헤딩'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제너럴 어사인먼트 리포터는 일단 입사한 뒤에도 그 능력과 역량을 '개방적으로' 검증하는 기간이다. 중요한 취재는제너럴 어사인먼트 리포터에게 맡기지 않는다. 예컨대 세월호 침몰 등의 대형 사건이 터지면, 한국에선 입사 1~3년차의 젊은 기자들을 보내지만, 미국에선 20년차 이상의 베테랑이 뛰어든다.
- 비트 리포터(Beat reporter)
이걸 '출입처 기자'라고 번역하면 한국적 맥락에선 오해가 생길 소지가 있다. 이들에게 비트(beat)는 물리적 공간인 동시에 추상적 '주제영역'이다. 그래서 광폭으로 움직인다. 당연히 고참 기자가 담당한다. 한국의 사회부 사건팀에 해당하는 USA 투데이의 브레이킹 뉴스팀 기자들의 경력이 20년 안팎인 것도 이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 언론에선 심층적이고 흥미진진한 사건 프로파일링을 시니어 기자들이 쓴다.
선배 기자들에겐 죄송한 이야기지만, 한국에서도 25년차 이상 기자들의 대부분을 사회부 사건팀 등에 배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경륜과 식견은 미디어를 조직하는 것보다는 현장을 '풍부하고 깊게' 관찰하여 해석하고 전달하는 데 더 유용하다. 예컨대 그들이라면 일베 집회를 취재한 뒤 단순보도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역사적 분석을 섞어 심층보도할수 있다.
- 시니어 라이터(Senior writer)
고참기자(Senior) 가운데 기사 작성을 전담하는 기자. 예컨대 부장(desk editor)이 제너럴 어사인먼트 리포터들에게 취재를 지시하면 그들이 보내온 취재 결과를 모아서 시니어 라이터가 집필한다. 미국 주간지를 보면, 'written by A, reported by B' 등의 바이라인을 볼 수 있다. 현장 취재는 B가 했지만, 이를 맥락 위에 엮어 집필한 것은 A라는 뜻이다.
현장 기자들이 올린 메모를 보고 팀장, 차장, 부장 등이 사실상 집필하는 한국 뉴스룸에서도 이 방식을 도입하면 좋겠다. '아무개/아무개 기자의 취재결과를 모아 아무개 팀장이 초고를 쓰고 아무개 부장이 최종집필했다'고 밝히면 더 투명하고 솔직하지 않은가.
현대 언론에 이르러서는 객관성과 공정성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투명성(transparency)이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줘라. 이것까지만 파악했으며 더 자세한 것은 모르겠으나 계속 더 알아보고 있다고 말하라. 그러면 독자가 기자를 신뢰한다'고 미국 기자들은 생각한다.
참고로 언론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미국 퓰리처상의 피처 라이팅(Feature writing) 부문은 심층취재 결과를 얼마나 높은 '문학적 완성도'로 작성했는지를 평가한다. "기자는 글 못써도 된다. 사실만 잘 파악하면 된다"는 한국언론계의 관념은 대단히 잘못됐다. 글재주 부리는 데 초점을 둬서는 안되겠지만, '공감의 글'을 쓰지 못하면서 어찌 기자를 하겠는가.
- 코레스폰던트(Correspondent)
이걸 특파원이라고 번역하면 좀 곤란하다. 한국으로 치면 '전문기자'에 해당하는 것이 코레스폰던트다. 예컨대 '펜타곤 코레스폰던트'(Pentagon correspondent)라고 하면 국방부 출입기자가 아니라 군사 전문기자다.
그래서 유력 언론사는 백악관 담당 기자를 비트 리포터(beat reporter)라 하지 않고, 화이트하우스 코레스폰던트(white house correspondent)라고 부른다. '백악관 특파원'이라고 번역하면 그 뜻을 담을 수 없다. 백악관을 담당할만큼 정치/외교 분야의 전문기자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특파원'은 '어디 멀리 보낸 기자'를 말한다. 한국만 떠나 있으면 개나 소나 특파원이다. 다시 말해, 코레스폰던트(correspondent)는 고참기자(senior)로 구성된 여러 비트 리포터(beat reporter) 가운데도 최고의 전문성을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만 전문으로 한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담당 분야는 특정되어야 하고, 공간적 의미도 필수다. 가령 '레드 카펫 코레스폰던트' 처럼.
-스태프 리포터/스태프 라이터(Staff reporter/writer)
스태프(staff)가 앞에 붙으면 해당 언론사에 정식 고용된 기자라는 뜻이다. 프리랜서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미국적 풍토를 엿볼 수 있다.
- 에디터(Editor)
데스크 에디터(Desk Editor, 부장)는 취재지시를 한다. 카피 에디터(copy editor, 교열 기자)는 기사를 취사선택한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한국에선 부장이 곧 취재를 지시하고 기사를 골라 보내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뉴스룸에서 데스크 에디터와 카피 에디터의 역할 분담이 어찌 이뤄지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 데스크 에디터는 '기사가 될만한 것을 지시'하고, 카피 에디터는 '취재결과를 담은 기사 가운데 게재(또는 방송)하고 싶은 기사를 선택'한다. 상호 견제와 협조의 관계인 듯 하다.
- 치프 에디터(Chief Editor, 편집국장)와 매니징 에디터(Managing Editor)
에디터를 총지휘하는 것이 치프 에디터인데, 그 아래에 꼭 매니징 에디터를 둔다. 부국장인 셈인데 이 사람은 편집국장 임무를 대행(마감 일정 관리, 기사 킬, 편집장의 정책 적용)할뿐 아니라, 기자의 채용, 배치, 해고를 담당한다.
좋은 기자를 가려 뽑고, 적절한 곳에 배치하고, (미국이니까) 무능하면 해고시키는 권한을 가진다. 가슴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일이 있는데, 언론은 기자하기 나름이다. 매체력은 기자 능력의 총합이다. 치프 에디터와 매니징 에디터의 관계는 학교에서 '교장과 교감'의 관계에 가깝다.
-아티클(Article)과 스토리(Story)에 대해
아티클은 개별 기사, 스토리는 하나의 기사든 여러 기사에 걸치든 하나의 사안을 모두 포괄하는 기사의 개념이다.
한국말로 '기사'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를 흔히 '아티클'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영미권에서 기사를 지칭할 때는 '스토리' 또는 '뉴스 스토리'라 부른다. 그 단어를 보고 '이 친구들은 기사를 소설처럼 쓴다는 건가?'라고 생각하면 절반의 진실이다. 독자와 교감할 수 있도록 친근하게 기사를 쓰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맞지만, 여기서 말하는 스토리는 '문체'가 아니라 '전체 맥락'을 지칭하는 뉘앙스다.
본래의 뜻으로 보아 아티클은 단편의 글을 말한다. 학술지에 실리는 개별 논문이 아티클이다. 스토리는 말 그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미국 기자들에게 기사는 단편과 파편의 정보가 아니라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뜻한다.
한국 신문의 기자는 단편을 전하는 사람인가, 완결을 갖춘 맥락을 전하는 사람인가.
*이 글은 안수찬 한겨레 기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바탕해 퇴고한 글입니. 기자 승낙 하에 슬로우뉴스 편집팀이 글 일부를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