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일 목요일

노무현 대통령의 숨겨놓은 딸 논란에 대한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2월 16일 부산지방법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조카인 노희정씨가 노무현 대통령의 친딸이라는 내용을 인터넷에 올린 노무현 타도 연합 대표 한상구씨에 대해 명예훼손죄로 징역 1년 3월을 선고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관련자들의 유전자 DNA 검사를 법원이 판단 근거로 삼아 관심을 끌었다. 유전자 검사를 담당한 서울대 의대 이정채 교수는 "민미영씨가 노희정씨의 친모일 때 노건평씨가 노희정씨의 친부일 확률은 99.99999999999994%"라고 밝혔다. 

↑ 노건평

그러나 피고인측 서석구 변호사는 "형제끼리 유전자가 비슷하기 때문에 노 대통령의 DNA를 검사하지 않고서 친자라고 판단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이 교수는 "이번 사건의 중요성 때문에 평소 23개의 DNA를 대조하던 평소 검사보다 더 많은 48개의 유전자를 대조했다. 지금까지의 검사 경험으로 노희정씨는 노 대통령의 친자가 아니다. 형제간에 유전자가 같을 확률은 10억분의 1이다"고 설명했다. 

이에 서 변호사는 "노 대통령이 유전자 검사에 응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며 판결 직후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피고인 한씨는 지난해 4월 "노건평씨의 부인 민미영씨가 노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사무실 여직원으로 함께 오랫동안 근무한 점, 노희정씨의 출생은 1981년인데 반해 노건평씨와 민씨의 결혼과 출생신고가 1983년으로 늦게 되었다는 점, 민씨의 동생인 민경찬씨가 노 대통령을 평소 '자형'으로 부른 것 등 여러 정황을 볼 때 노희정씨가 노 대통령의 친자"라는 주장을 인터넷에 올리고 이를 피켓으로 만들어 부산 일대에서 시위를 벌이다 민미영씨에 의해 고발돼 지난해 5월 13일 구속되었다.

 

 

 

노학용      노판석

 

민미영     민경찬 (동생)

노희정(조카)     연철호(사위)

 

 

 

 

 

健平씨의 처남 민경찬씨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투자자금 653억원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오면서 盧대통령의 家系(가계)에 대한 世間(세간)의 궁금증이 증폭됐다고 할 수 있다. 
  
  盧武鉉 대통령의 家系는 한마디로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盧대통령의 가족 및 친인척들을 둘러봐도 이렇다 할 명망가는 없다. 가정형편도 부유하다기보다는 중하층 수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盧武鉉 대통령도 지난 大選 유세 때 『우리 집안에는 잘 나가는 사람이 없어 부정한 돈 몇천만원만 들어와도 금방 표시가 난다』고 했다. 
  
  盧武鉉 대통령은 1946년 9월1일(음력 8월6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峰下마을에서 태어났다. 盧대통령의 아버지는 盧判石(노판석·1900년 출생·1976년 사망)씨며, 어머니는 李順禮(이순례·1904년 출생·1998년 사망)씨다. 盧대통령은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盧대통령의 본관은 光州(광주)이며, 盧씨 광주파의 32대 孫(손)이다. 
  
  盧대통령 아버지 判石씨는 盧대통령의 어머니 李順禮씨와는 再婚(재혼)이며, 盧대통령의 어머니 李順禮씨는 盧대통령의 아버지와는 세 번째 결혼을 한 사이이다. 盧判石씨는 첫째 부인 趙永喜(조영희)씨와 결혼을 했으나, 1931년 12월19일 합의이혼을 한 것으로 호적에 기록돼 있다. 盧判石씨와 趙永喜씨가 언제 결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判石씨 호적에 기록돼 있지 않다. 
  
  盧武鉉 대통령의 어머니 李順禮씨는 19세이던 1923년 3월10일 金必用(김필용)씨와 첫 결혼을 했으나, 1929년 金必用씨가 사망했다. 李順禮씨와 金必用씨 사이에서는 1녀(金仙密·김선밀)를 두었다. 이후 李順禮씨는 李順豊(이순풍)씨와 재혼한 뒤 1933년 1월11일 盧대통령의 아버지 盧判石씨와 세 번째 혼인신고를 했다. 
  
  盧대통령의 아버지 判石씨는 타이어 제조 기술자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判石씨는 日本과 中國 上海(상해) 등지를 돌며 재산을 모았으나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盧대통령이 태어났을 무렵에는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盧대통령의 아버지 判石씨가 李順禮씨와 세 번째 결혼을 하게 된 것은 같은 고향 출신인 李씨 부친(李永昊ㆍ작고)에게 漢學(한학)을 배운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盧대통령의 어머니 李順禮씨는 생활력이 매우 강한 여성이었다는 게 고향 마을 사람들의 얘기다. 盧대통령은 지난 大選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먹고 살기 위해 환갑이 넘도록 고구마순과 딸기를 이고 30∼40리 떨어진 馬山까지 가 팔곤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盧武鉉의 형제들
  
  盧武鉉 대통령의 형제로는 큰누나 明子(명자·74), 큰형 英鉉(영현·작고), 둘째 누나 榮玉(영옥·66), 둘째 형 健平(건평·62)씨가 있다. 
  
  盧대통령의 큰누나 明子씨는 일제시대 때 소학교만 나와 농사를 짓던 강원도 삼척 출신의 楊奉賢(양봉현)씨와 결혼, 1남1녀를 두었다. 明子씨는 1987년 남편이 죽은 뒤 미술교사인 큰딸 애실(46)씨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明子씨의 아들 호식(42)씨는 울산大 화학과를 졸업한 뒤 한때 목욕탕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회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둘째 누나 榮玉씨는 세탁소를 운영하던 집으로 시집을 갔다. 榮玉씨도 소학교만 졸업했다. 
  
  榮玉씨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전순실(42)·전보해(40)씨라는 두 딸을 두었다. 榮玉씨의 큰사위 鄭宰晟(정재성·43)씨는 부산 동아高와 서울大 법대를 나와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 부산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다. 榮玉씨의 큰딸 순실씨는 부산女大(現 신라大)를 졸업했고, 1남1녀를 두고 있다. 보해씨는 부산 경성大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盧대통령의 형 健平씨는 1942년 1월30일 김해군 생림면 사촌리 145번지에서 출생했다. 健平씨는 세 번 결혼을 했다. 健平씨는 1974년 9월12일 吳明禮(오명례)씨와 첫 혼인신고를 했다. 健平씨는 32세, 明禮씨는 26세 때였다. 吳씨는 경남 김해군 대저읍 노득리에서 태어났다. 健平씨와 吳明禮씨 사이에는 1남1녀를 두었다. 딸 志姸(지연)씨는 1973년 7월29일 김해군 진영읍 본산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호적에 기록돼 있다. 志姸씨는 2000년 4월3일 연철호씨와 결혼을 했다. 아들 尙煜(상욱)씨는 1974년 6월23일 출생했다. 
  
  健平씨는 부인 吳明禮씨가 1976년 4월2일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다음해인 1977년 12월25일 吳順貞(오순정ㆍ47)씨와 재혼을 했으나 1979년 합의이혼을 했다. 吳順貞씨는 1957년 11월5일 경남 진주시 동성동에서 태어났다. 健平씨와 吳順貞씨 사이에는 딸 炫知(현지)씨를 두었다. 
  
  健平씨의 두 번째 부인 吳順貞씨는 현재 健平씨와 같은 지역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內 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기자는 2002년 10월과 2003년 6월6일, 2003년 11월에 둘째 부인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를 찾았다. 그러나 그 때마다 두 번째 부인을 만날 수 없었다. 아파트의 현관 문도 잠겨 있었다. 이 부인은 현재 창원시 남양동에서 음악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경남교육청에 확인 결과, 이 부인이 운영하고 있는 음악학원 설립자는 盧健平씨다. 
  
  
  健平씨의 두 번째 부인과 얽힌 여러 가지 사연
  
  盧健平씨는 1969년 3월 세무공무원(9급) 생활을 시작한 뒤 8년간 재직하다 마산세무서에 근무하던 중 뇌물수뢰 사실이 드러나 공무원직에서 물러났다. 健平씨는 東마산세무서에 근무할 당시인 1975년 7월 黃모씨로부터 『부동산 투기 억제세가 부과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40만원을 받은 혐의가 1978년 4월에 드러나 검찰에 구속됐다. 이 당시 健平씨에게 부탁을 했던 黃모씨는 1977년 결혼한 두 번째 부인의 어머니다. 따라서 健平씨는 두 번째 부인과 혼인신고를 한 다음해인 1978년 뇌물수뢰 사실이 드러나 검찰에 구속됐는데 이로 인해 부산지방국세청으로부터도 직위해제(파면) 처분을 받았고, 다음해인 1979년 두 번째 부인과 합의 이혼한 것이다. 
  
  당시 마산세무서 징계위원회가 작성한 盧健平씨의 징계처분 이유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75년 7월 초 마산시 소재 다방에서 黃모씨로부터 그 남편 吳모씨가 양도한 대지 1100여 평에 대한 부동산 투기 억제세를 부과받지 않도록 해 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받고 돈 40만원을 받은 후, 관할 세무서로 발송돼야 할 부동산 투기 억제세 과세자료를 절취, 세금을 징수할 수 없게 했다> 
  
  당시 마산세무서장 명의로 된 보고서에는 「본건 수뢰사건의 내용을 볼 때 가정불화로 사건이 표면화된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閔美迎씨의 주소지 이전
  
  健平씨는 두 번째 부인 吳順貞씨와 합의이혼을 한 지 4년 뒤인 1983년 현재 부인인 閔美迎(민미영·47)씨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健平씨의 세 번째 부인인 閔美迎씨는 현재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화마을에서 健平씨와 딸 希正(희정)씨, 세 명이서 살고 있다. 閔씨는 경남 창원군(現 창원시) 창원면 서상리에서 태어났다. 
  
  閔씨는 健平씨와 혼인신고를 한 이후 혼자서 주소지를 네 차례 옮긴 것으로 주민등록등본에 기재돼 있다. 경남 김해군(現 金海市) 진영읍 본산리 38번지에서 1989년 1월31일 경남 창원시 서상동 359-1번지로 옮긴 뒤, 다음해인 1990년 4월17일 다시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38번지로 이전했다. 
  
  閔씨는 다시 2년 뒤인 1992년 4월5일 경남 거제군(現 거제시) 일운면 망치리 49-1번지로 옮겼고, 10개월 뒤인 1993년 2월27일 다시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38번지로 돌아왔다. 閔美迎씨가 1989년 1월31일 주소지를 경남 창원시 서상동 359-1번지로 이전을 할 때는 健平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希正)도 함께 이전을 했고, 이 때 딸은 8세였다. 
  
  기자는 2003년 6월5일 오전 盧健平씨와 閔美迎씨 부부를 만나기 위해 봉화마을 집을 찾아 갔으나 健平씨 부부는 집에 없었고, 딸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었다. 健平씨의 딸 希正씨는 기자에게 『아버지는 출타하셨고, 어머니는 옆집에 가셨다』고 했다. 希正씨는 부산의 신라대학교 성악과에 다니다 3학년 때인 2003년 학교를 그만 두었다. 
  
  최근 불법적인 방법으로 653억원을 모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민경찬씨는 閔美迎씨의 동생이다. 
  
  
  盧武鉉 대통령 부인 權良淑씨
  
  盧武鉉 대통령과 부인 權良淑(권양숙)씨는 1975년 결혼을 했다. 이 부부 사이에서 난 장남 信傑(신걸·30)씨는 이후 이름을 建昊(건호)로 바꾼다. 딸 慈然(자연·28)씨의 이름도 靜姸(정연)씨로 바꾸었다. 盧대통령 부부가 자신의 아들, 딸의 이름을 바꾼 것은 盧대통령의 어머니 李順禮씨가 『자녀의 이름을 바꾸어야 大成한다』고 권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權良淑씨는 부산 계성女商을 다니다 3학년 때 중퇴했고, 2003년 3월 숙명女大 「최고여성지도자 아카데미」 10주 과정을 이수했다. 주요 수강과목은 「여성지도자의 리더십」, 「여성지도자와 국제매너」 등이었다고 한다. 
  
  權良淑씨는 비교적 화통하고 활달한 성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상도 사투리 어투가 강하긴 하지만 화술이 세련된 편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지난 大選 때 『盧후보가 집안 일을 돕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잠자리에 들 때) 님도 눕고 나도 누우면 저 등불은 누가 끄나」라고 하면 남편이 일어나서 불을 끈다』고 즉답할 정도로 성격이 매우 밝은 편이라는 것이다. 
  
  盧대통령 부부는 아들 建昊씨의 출생신고와 함께 혼인신고를 했다. 建昊씨는 2002년 8월 연세大를 졸업하고 LG전자에 입사했다. 서울 여의도女高와 홍익大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한 靜姸씨는 駐韓 英國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盧대통령의 아들 建昊씨는 2002년 12월25일 연세大 동문회관에서 부산商高 동문회장인 辛相佑(신상우) 前 국회부의장의 주례로 裵庭敏(배정민·27)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庭敏씨는 경남 김해 출신으로, 김해女高와 연세大를 졸업했다. 庭敏씨의 아버지 柄烈(병렬)씨는 농협중앙회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뒤, 최근 농협중앙회 산하기관에서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盧대통령의 처가
  
  盧武鉉 대통령의 처가 쪽도 평범하기는 盧대통령 집안과 마찬가지다. 부인 權良淑씨 집안은 盧대통령이 중학교 1학년 때인 1959년 경남 김해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盧대통령이 살고 있던 김해시 진영읍 峰下부락 왼편 산 밑에 위치한 權씨의 집은 대나무가 많아 「대밭집」이라고 불렸다. 
  
  權良淑씨는 1남3녀 중 둘째다. 盧대통령 장인 權五晳(권오석)씨는 1922년 경남 창원군 진전면 출신이다. 진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5년제 밀양농잠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다 1943년 지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마산시 진동면 면사무소에서 근무했다. 權씨는 1945년 12월 친구와 함께 막걸리에 메틸 알코올을 섞어 마셨다가 친구 1명은 숨지고 자신은 시력을 잃어 다음해인 1946년 면사무소를 그만 두었다고 한다. 
  
  盧대통령의 장모 朴德南(박덕남·84)씨는 은행원인 외아들 權奇文(권기문·49)씨와 살고 있다. 奇文씨는 盧武鉉 대통령의 妻家 쪽에서 盧대통령과 자주 만나는 유일한 사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奇文씨는 부산商高ㆍ경성大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한일은행에 入行해 현재 우리은행에 근무하고 있다. 부인 鄭貴畢(정귀필·46)씨와의 사이에 修鉉(수현·20, 서강大 자연과학부 1년), 祥赫(상혁·18, 부산 중앙高 3년) 등 1남1녀를 두었다. 
  
  權여사의 오빠 昌左(창좌·58)씨는 1988년 건설회사에 다니던 남편(김재석)과 死別하고 아들 김경우씨와 함께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權여사의 여동생 珍愛(진애·52)씨는 남편 李勝男(이승남·57·상업)씨와 부산에서 거주하고 있다. 珍愛씨는 어릴 적 이름이 「외진」으로 李씨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두었다. 장녀 이혜진(26)씨는 부산의 부경大 화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大選 때 민주당 부산 선거대책위원회 유세팀에서 이모부인 盧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 혜진씨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문화여성분과위원회 실무요원으로 선발되기도 했고, 현재 청와대 비서실에 근무하며 고모인 權良淑씨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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