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5일 월요일

[노트북을 열며] 민주당이 본 박근혜 대통령의 그늘

[중앙일보] 입력 2013.11.25 00:34 / 수정 2013.11.25 00:34
강인식
정치국제부문 기자
지금은 투쟁의 목소리가 민주당을 뒤덮고 있지만, 투쟁만으론 박근혜 대통령을 이길 수 없다고 보는 민주당 사람도 적지 않다. 드러나지 않을 뿐 누군가는 투쟁 그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그를 찾아 얘기를 들었다.

 그는 대통령의 약점을 분석하고 있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미약한 지지율(41%·갤럽)로 출발했지만 이를 저점으로 60%대까지 올라온 뒤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표의 이면에선 불안요인도 함께 자라고 있다고 한다. 지지도는 유지되고 있지만 부정평가가 늘어나고 있다. 추석 직전엔 응답자의 19%가 대통령이 못한다고 답했지만 한 달 뒤엔 34%가 그렇게 답했다. 응답을 유보하고 대통령의 변화를 기대하던 이들이 대거 부정평가로 돌아서고 있다는 얘기다. 부정평가의 이유를 보니 “공약에 대한 입장이 바뀐 것이 싫어서(36%)”라고 답한 이들이 가장 많았다. 원칙과 신뢰의 지도자로 불리는 대통령에겐 언짢은 일이다.

 “대통령의 진짜 약점은 최대 강점 속에 숨어 있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 강대국 정상과의 만남에서 대통령은 완벽했다.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 중국 칭화대 연설, 프랑스 경제인간담회 연설에서 보여준 외국어 능력.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자연스럽고 격조 있는 모습이 담긴 수많은 헤드라인. 초강대국 정상들이 박 대통령에게 보여준 예우. 여기에 김정은 북한 체제에 대한 일관된 대응도 좋은 평가를 받으며 외치(外治)는 대통령의 자랑거리가 됐다. 시나브로 외교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는 부쩍 커져버렸다.

 “기대는 곧 무섭게 무너질 겁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박 대통령을 환대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케리 국무장관과 헤이글 국방장관을 일본에 보내 집단적 자위권을 지지토록 했다. 수전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일본이 미국의 안보 파트너가 될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고급 외교의 이면에 어떤 고려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국민 눈높이에선 한국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았다. 의전을 벗어난 현실 외교에서 박 대통령은 어떤 힘을 발휘했는가. 민주당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겠다고 했다.

 한국은 미·일의 방어체제에 들어갈 수 없다. 상당 부분 중국 때문이다. 그럼 중국은 한국을 배려할까. 시진핑 주석과의 뿌듯한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박 대통령은 중국이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탈북자를 북송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해야 했다. 미-중-일 다자외교에서 박 대통령의 약점은 더 많이 드러날 것이고, 실망으로 바뀐 기대는 지지율을 침식할 것이다.

 그의 말이 그럴 듯했다. 그런데도 걱정이 크다고 했다. 대통령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통치능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지금은 투쟁의 시기여서 민주당엔 여력이 없다는 거다. 이렇게 시간이 훅 가버리는 건 아닌지, 대통령의 강공에 민주당이 말린 건 아닌지, 이 국면을 박 대통령이 즐기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투쟁 이후를 고민하고 있지만 투쟁국면을 끝낼 방법이 없다는 얘기로 들렸다.

강인식 정치국제부문 기자

[이철호의 시시각각] 임수경을 함부로 욕하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2013.11.25 00:34 / 수정 2013.11.25 09:14
이철호
논설위원
그 사진이 또 말썽이다. 1989년7월 평양의 ‘세계청년학생축전’ 사진 이야기다. 밀입북한 임수경 민주당 의원(당시 외국어대 4년·이하 경칭 생략)이 김일성과 다정하게 손을 맞잡는 광경이다. 이번엔 임수경이 과연 김일성에게 ‘아버지’라 불렀는지가 관전포인트였다. 법원은 “실제로 그런 호칭을 썼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며 임수경에게 패소판결을 내렸다. 이 사진은 오랫동안 진영논리를 가르는 경계선이었다. 진보진영은 ‘남북화해’의 상징으로 떠받들고, 보수 쪽은 ‘종북’이라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진실에 다가서려면 사진의 이면을 읽는 힘이 필요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90~98년 동안 모조리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남북의 경제격차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벌어진 시기다. 북한은 그 원인을 “사회주의권 붕괴와 자연재해, 미국의 제재”로 꼽는 게 공식 입장이다. 일리 있는 분석이다. 중국은 89년 천안문 사태로 정신이 없었다. 이듬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91년에는 소련이 해체됐다. 북한은 94~97년 가뭄과 홍수로 큰 흉작을 겪었다. 쌀과 옥수수 생산량이 3분의 1 토막 났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93년)로 국제적인 제재도 강화됐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다.

 다만 북한이 빠트린 게 하나 있다. 어쩌면 꽁꽁 숨기고 싶은지도 모른다. 김일성에게 88올림픽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여기에 맞바람을 놓은 게 청년학생축전이다. 한겨레신문은 89년 3월 15일 평양을 방문한 재미언론인 안동일씨를 인용해 이렇게 보도했다. “서울올림픽이 성대하게 치러진 것에 자극받아 청년학생축전에 국가적인 역량을 총동원했다. …표면적 경비(직접경비)만도 47억 달러를 투입했다. 평양 광복거리의 8㎞ 구간 양쪽에는 12층에서 22층의 고층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모두 3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북한이 쏟아부은 47억 달러는 서울올림픽의 총투자비 2조3826억원(당시 환율로 35억 달러)을 훨씬 웃도는 규모다. 체면을 차리느라 불필요한 전시성 사업에 재정을 탕진한 것이다. 그 대가는 값비쌌다. 남한은 올림픽을 치른 뒤 9년 만에 경제규모가 갑절이나 커졌다. 북한은 9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으로 곤두박질했다. 재정이 파탄 나는 바람에 외부에서 밀어닥친 동구권 붕괴와 국제 제재 쓰나미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사진 속에는 김일성이 임수경의 양팔을 껴안으며 환하게 웃는다. 하지만 북한의 쓰라린 패착이 사진의 본질이다. 남북 간 체제경쟁의 종말을 고하는 역사적 장면이나 다름없다.

 남북관계도 긴 호흡으로 볼 필요가 있다. 남북교류가 꽉 막힌 지금, 멀리 내다본다면 탈북자 정착에 관심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2만5000명이 넘는 탈북자 가운데 상당수가 북한에 남은 가족들에게 송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과거 재일교포가 송금한 돈을 ‘후지산 줄기’라 했는데, 요즘은 한국에서 들어가는 돈을 ‘한라산 줄기’라 부른다”고 했다. 적지 않은 탈북자가 중국 휴대전화로 북한의 친척과 은밀히 통화하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문제는 대화 내용이다. 탈북자 단체들에 따르면 주로 “남한은 돈 벌기는 좋아도 사람 살기는 힘들다”는 이야기가 오간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차별이 묻어난다.

독일 통일도 먼저 동독 의회가 자진해 서독과 합병하기로 결의했기에 가능했다. 과연 급변 사태가 일어나면 북한 주민들은 남한과 통일을 원할까, 아니면 중국이 내미는 손을 잡을까. 누구도 자신하기 어렵다. 목숨이 걸린 선택 앞에선 확실한 정보만 믿기 마련이다. “사람 살기가 어렵다”는 입소문을 듣고 누가 선뜻 남한으로 기울겠는가. 탈북자 출신의 국회의원을 넘어 더 많은 성공 스토리가 쏟아졌으면 한다. 북한 학력을 인정받아 줄줄이 의사가 탄생하고, 서울대 로스쿨에 탈북자 2명이 합격했다는 소식이 반갑기 그지없다. 탈북자들의 ‘코리안 드림’만큼 생생한 증거는 없다. 그들을 통해 돈과 휴대전화 통화가 오가는 시대가 아닌가.

이철호 논설위원
한국의 벤처산업그 중에서도 특히 인터넷 산업이 내수에 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그 이유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전에 과연 얼마나 많은 국내벤처기업들이 닷컴버블 이전부터 웹2.0시대까지 해외진출을 시도하고 또 좌절을 했는지 살펴 보자.

우선 다수의 국내스타군단들이 그 일군을 이루고 있다.
한컴다수의 국가에 진출을 했으나 마땅한 수익모델 창출을 못함
새롬다이얼패드의 신화는 결국 재앙으로 결말
- SK컴즈의 싸이월드아시아 각국 및 유럽까지 진출을 하였으나 지금은 전부 철수
다음중국일본사업 철수미국은 라이코스인수를 통해서 잔류하고 있으나 적자지속
네이버일본 및 중국사업 재정비를 하고 있고특히 일본사업은 재도전 중
핸디소프트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으나 미국 시장 등에서 여전히 고전 중
안철수연구소다각도로 해외진출을 시도하였으나 계속 계획만 발표
포스데이타미국 IPTV사업에 진출하였으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음
판도라TV일본 및 중국 등에서 반짝 주목은 받았지만 해외진출을 통한 성과는 미미

사업의 규모가 제법 되는 기업들 뿐 아니라 중견이나 소규모 벤처들의 해외진출 실패사례도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그 중에서 몇 개만 정리해 보면
- CRM의 선두주자였던 아이마스
웹오피스 전문기업 씽크프리
한국 최초의 인터넷쇼핑몰 기업이었던 이네트
- MSP 분야의 개척자였던 아이월드
섬유전문 B2B기업 아이텍스타일
단군의 땅으로 유명한 마리텔레콤
웹에디터의 개척자 나모인터랙티브
인터넷보안분야의 개척자였던 시큐어소프트
등의 기업들 모두가 처절한 해외진출의 실패 경험으로 인하여 심지어는 어떤 기업은 과도한해외시장 개척비용의 투입으로 인하여 한국사업자체를 접기도 했다.

어림잡아 1998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IT기업들이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쏟아 부은 비용을 다 합치면 적어도 1조 이상은 될 것이다예를 들어,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중국에 진출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를 한 벤처기업이 300개가 넘는데 그 기업들이 적어도 10억 정도의 해외시장개척자금을 투입했다고 본다면 그 총액만해도 3천억이나 된다일본이나 미국의 경우는 투입 비용이 더 많았을 것이고진출을 시도했던 기업도 훨씬 많다는 판단이므로 적어도 1조는 가볍게 넘을 것이다그 많은 돈이 투입이 되었는데 과연 해외에서 성공했다고 알려진 기업이 몇이나 되는가?

상황이 이러하므로 IT산업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Insight가 있는 전문가들 마저 한국의 인터넷산업은 그저 내수산업에 불과하다는 자조 섞인 한탄을 하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과연 그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입하면서 해 온 도전이 정말로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우선 성과가 없다는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 도전을 그저 무모한 도전이었을 뿐이다라고 결론 지을 수 밖에 없다그러나 살짝 눈을 돌려 분야가 다른 기술기업들의 성과를 한 번 보자온라인게임과 몇몇 반도체기업들 및 부품 소재기업들의 성장은 인터넷벤처를 비롯한 주로 SW사업에 주력했던 해외진출 실패기업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눈부신 성과이다다음은 소리소문 없이 해외에서 성과를 올리고 있는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이름의 부품이나 소재 관련 기업들이다.
디지아이디지털 잉크젯 인쇄기기 제조
아모텍칩바리스터
창민테크초음파유량계
코코실버은용액제조기
비젼이노텍고강성복합재료 라인보링바
             - 포디컬쳐지능형 얼굴 인식시스템
알티베이스메인 메모리 DBMS
아이세미콘반도체 제조공정 종합분석 소프트웨어
에스에스비: SiGe HBT RF증폭기
수일개발인슐린 자동공급기

그렇다면인터넷을 기반으로 하거나 SW가 중심인 사업모델을 가진 대다수의 기업들은 위와 같이 처참하게 실패를 하고온라인게임반도체부품소재 기업들은 크고 작은 성공을 일구어 낼 수 있었던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각 산업분야별로 혹은 개별기업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이 실로 다양하기에 일일이 비교하여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비교적 그 성공의 결실이 많이 노출이 되어 있는 온라인게임산업이 해외시장에서 선전을 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간략히 정리해 볼 수는 있겠다.

누가 뭐래도 한국의 온라인게임은 선도적 시장 개척과 지배적 지위를 창출하였다
산업 특성상 문화적/언어적 장벽이 사업 전개에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기술적 진보보다 중요한 것은 서비스의 진보임을 사업의 주체들은 잘 알고 있다
게임성공의 주요 요소인 스토리나 게임성에 있어서는 아직 많은 발전이 필요하지만,서비스 운영의 노하우나 서버운용능력수익창출모델의 창의성에 있어서는 해당 국가 사업자들과의 경쟁에서 절대 지지 않는다
게임개발 초기부터 아예 해외 출시를 염두에 둔 기획을 통해서 글로벌사업에 적합한 상품을 출시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합작법인/라이센스/직접투자/포괄적퍼블리싱/간접투자 등등 각 지역 실정과 게임개발사의 동원가능자원과 역량에 걸맞는 다양한 진출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등을 성공 요인으로 꼽아 볼 수 있을 듯 하다물론 이 외에도 다양한 성공 요인들이 있을 것이고, 비록 성공한 게임개발사라고 해도 그 성공의 이면에는 많은 실패와 좌절의 경험 또한 있을 것이다하지만불모지와 같은 온라인게임산업을 만들어 내고시장을 확대시키고심지어는 해외에서 단군이래 가장 큰 규모의 로열티 수익을 창출해 내고 있는 온라인게임산업의 해외진출성공 사례는 실패로 점철된 한국벤처의 해외진출이라는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한줄기 빛과도 같은 것이다.

이렇듯 게임산업의 해외진출은 화려하지만 인터넷이나 SW 연관 산업의 해외진출은 왜 그렇게 초라한 것일까생각나는 대로 적어본 피상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닷컴버블의 시기든 웹2.0의 시기든 한국의 인터넷기업이 선도적으로 선점한 사업 모델이 별로 없다
물론 아이러브스쿨이나 싸이월드 등 창의적이고 선도적 지위에 있었던 모델이 없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의 성공이 반드시 해외시장에서의 성공을 보장해 주지는 않았다페이스북이나 마이스페이스가 아이러브스쿨이나 싸이월드보다 기술적으로 월등히 나은 점이 있는가?
최고의 기술이라고 스스로 흥분하며 주관적으로 판단한 기술의 수준이 최고가 아닌 경우가 많다.세상은 참으로 넓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기술은 끝없이 진보한다
사업은 역시 매출이고 이익이다그리고 그 모든 것은 경영자들의 역량에 달려 있는 셈인데아쉽게도 한국의 벤처기업가들은 해외시장이 한국시장보다 쉽다고 손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한국시장에서 온갖 부조리와 시장파괴와 무질서를 이겨내고 성공을 해 봐서 그런지
역시 인력의 경험이 문제다많은 사람들이 수 없이 지적해 왔던 문제다
자조적으로 본다면 인터넷이나 SW 산업은 여전히 영어가 대세다구글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못 누리고 있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딱 6개라고들 한다한국일본중국러시아체코그리고 북한나머지 전세계국가의 네티즌들은 구글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트위팅으로 하루를 보내고 페이스북킹으로 하루를 마감한다언어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문화이고 생활이다
솔직히 해외진출이 절대절명의 과제였다기 보다는 다소 겉멋이 든 것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기업가들처럼 해외에서 깨어지고 넘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그렇게 무모하게 보이리 만큼 지속적으로 해외 시장에 도전을 하는 나라가 과연 있을까그러므로 성공과 실패를 두서없이 대비를 시켜 보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찾아야 할 해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좁고 작은 한국시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다명쾌한 정답을 구하지 못하여 답답한 심정 이를 데가 없지만 아직도 앞서 언급한 참담한 실패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으며 도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한국의 작은 벤처기업들을 보면서 다소 진부하지만 조언을 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         시장절대적지배자가 있는 국가는 가급적 피하고 이제 막 성장하는 시장을 노려라예를 들면초고속인터넷보급률이 막 30%를 넘어가는 국가들이 필요로 하고 사용자들 보편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서비스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한국의 2000년 초반을 돌이켜 보면
-         국내사업의 현금흐름과 수익성이 절대적인 안정권에 있을 때 시도하라어떤 기업은 대부분의 이스라엘 기업들 처럼 아예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걸 수도 있을 것이다그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충분한 자금과 인력을 확보한 상태에서 도전하라
-         현지 문화코드를 읽을 줄 아는 트렌드 스페셜리스트를 양성하거나 현지에서 발굴하라다만그 인력이 한국에서 해당기업이 만들어낸 서비스나 솔루션이 왜 성공했는지,과연 어떤 것이 핵심적인 성공요소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도록 충분히 교육하여 완벽하게 습득케 하여라
-         동원가능자원의 20% 이상은 절대로 쏟아 붓지 마라조금 만 더 하다 보면 모든 것을 걸게 된다사업은 도박이 아니며모든 것을 건 도박도 성공확률은 극히 낮다
-         외국에서 한국으로 진출한 기업들의 성공 패턴을 자세히 보라멀게는 마이크로소프트어도비시만텍야후 등등에서부터 가깝게는 구글이나 주니퍼네트웍스 같은 기업들이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뿌리내리는 과정과 그 요인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겠다 

 어설픈 조언에 죄송하고전후좌우 사정도 들어 보지도 않고 실패라고 낙인을 찍어버린 앞 서 언급한 해당기업들의 주역들에게도 송구할 따름이다하지만 너무나도 뛰어나고 창의력이 넘치며 열정이 펄펄 끓고 있는 한국의 기업가들이 경험이나 준비의 부족으로 실패를 거듭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여 무모한 포스팅을 해 본다.

2013년 11월 22일 금요일

[박보균 칼럼] 추월 중 … 한·미 동맹

[박보균 칼럼] 추월 중 … 한·미 동맹

[중앙일보] 입력 2013.11.22 00:35 / 수정 2013.11.22 00:35
박보균
대기자
한반도는 예민하다. 지정학의 속성이다. 동북아 역학구도는 복잡 미묘하다. 그 유별남은 한국 외교에 통찰을 요구한다. 역사 속에 해법이 있다. 역사는 외교적 직관과 감수성을 제공한다.

 카이로(이집트) 회담 70주년이다. 1943년 11월 22일 회담은 시작됐다. 미국(루스벨트), 영국(처칠), 중국(장제스·蔣介石) 정상은 결의했다. 종전 후 식민지 한국의 독립 보장이다. 이런 역사 상식도 있다. “선언문에 한국 독립 조항을 넣은 것은 장제스 공로다”-. 그것은 심한 과장이다. 장제스는 조연에 그쳤다. 그 조항의 주도자는 루스벨트였다.

 나는 카이로 회담 현장을 찾았다(본지 11월 16일자 14, 15면). 기록·연구서의 진실을 추적했다. 그 속에 중국의 한반도 본능이 드러난다. 회담 초점은 중국의 영토 회복 문제였다. 루스벨트의 장제스 분석은 이랬다. “중국이 한국 재점령 등 광범위한 야심을 갖고 있다.”(미국무부 외교문서 FRUS)-.

 그 시절 충칭의 임시정부는 장제스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그 도움은 우리 역사에서 고마운 부분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사안에선 미온적이었다. 주석 김구의 염원은 임시정부 승인 문제였다. 장제스는 그 요청을 외면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임정 외교부장 조소앙의 설명은 명쾌하다. 그는 “일본 패망 뒤 한국을 자기 종주권 아래 두려는 중국의 욕망 때문일 것”(FRUS)이라고 했다. 한반도에 대한 욕망-. 그것은 청일전쟁(1894~95년) 이전으로 복귀다. 중국의 보편적인 정서다. 임정에겐 위선과 이중성으로 다가간다.

청일전쟁 패배는 중국인에게 탄식과 굴욕이었다. 한반도에서 중국 영향력의 퇴출은 처음이었다. 에드가 스노우의 책 (『중국의 붉은 별』)에 이런 대목이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10대 시절 독서 기억이다.

 “나(마오쩌둥)는 첫 문장이 ‘슬프도다. 중국은 장차 망하고 말 것인가’로 시작하는 책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내용은 조선과 대만에 대한 일본의 정복(청일전쟁), 인도지나 등에서 중국의 종주권이 상실된 것을 얘기한다. 나는 조국의 앞날에 대해 걱정하고…”

 장제스는 국공(國共)내전에서 마오에게 패배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한반도 인식과 열망은 비슷하다. 지금 중화의 후손들은 그 숙원을 실천하고 있다.

 북한은 중국의 경제 예속 상태다. 중국 지원이 없으면 북한 경제는 무너진다. 김정은 체제의 핵 무장 야욕은 거칠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핵 야욕의 통제를 약속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북한관계의 변화를 시사했다. 그 후 북·중의 단합은 미묘해졌다. 평양에 대한 베이징의 언어와 표정은 달라졌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간직한다. 그 가치는 미·중 대치에서 완충 역할이다. 북·중 관계의 본질은 살아 있다.

 국제 거래에 공짜는 없다. 중국은 북한 핵 통제의 대가를 바란다. 그 속에서 한·미동맹의 이완을 노린다. 중국은 한국을 미국 편에서 떼어내려 한다. 한·미동맹은 중국의 동북아 열망을 차단한다. 한국 외교의 고심은 커진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다. 한국은 중국과의 경제교류를 늘려야 한다.

 미국과 일본의 단합은 뚜렷해진다. 미국의 핵심 전략은 중국 군사력 확장의 견제다. 미국은 일본 편에 선다. 아베 정권의 집단자위권 추진을 뒷받침한다. 미·일동맹의 결속력은 한·미동맹을 추월하려 한다. 집단자위권은 군비증강이다. 우리의 경계 대상이다.

 한·미·일 삼각 안보 체제는 흔들리고 있다. 한국 외교는 선택해야 한다. 선택 시점을 놓치면 곤란해진다. 한국은 미·일과 중국 사이에서 방황하게 된다. 대안은 마땅치 않다. 한국의 중재자 역할론은 위험하다. 한국은 중진국이다. 강대국은 중진국의 그런 순진한 여유를 비웃는다.

 아베 정권은 계속 불쾌하다. 스가 관방장관은 안중근 의사를 모욕했다. 한국 외교부는 반박, 성토했다. 중국 정부도 우리를 거들었다. 하지만 역사 문제는 독자 역량에 의존해야 한다. 한국에겐 중국과도 역사 갈등(동북공정)이 있어서다. ‘아시아 패러독스’는 복선이고 다층이다.

 중·일의 영토 분쟁은 험악하다. 하지만 중국의 자세는 실용적으로 바뀌고 있다. 시진핑 외교의 정냉경열(政冷經熱)이다. 정치와 경제를 나누는 것이다. 일본에 대한 한·중 공동 압박은 한계가 있다.

 동북아 안보환경은 거대한 전환기다. 박근혜 외교는 고난도 게임에 익숙해야 한다. 우리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는 북한 핵 문제다. 그 바탕에서 완급과 경중을 재점검해야 한다. 정치·군사·경제 쟁점의 조합은 유연해야 한다. 동북아는 강대국 국익의 경연 무대다. 카이로 선언은 교훈과 지혜를 준다.

박보균 대기자

[이규연의 시시각각] 응답하라, 1983 1993 베이비

[이규연의 시시각각] 응답하라, 1983 1993 베이비

[중앙일보] 입력 2013.11.22 00:34 / 수정 2013.11.22 00:34
이규연
논설위원
짓궂은 속설이 있다. 남을 못되게 하는 건 쉽지만 잘되게 만드는 건 어렵다. 또 무엇을 못 하게 하는 건 쉽지만 하게 만드는 건 어렵다. 이런 속설이 출산만큼 잘 통하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애를 못 낳게 하는 건 쉽지만 낳게 만드는 건 어렵다. 우리의 인구사가 그 증거다.

 박정희정부는 집권 초기인 1961년 출산억제 정책을 쓴다. 이승만 정부의 장려 정책을 무너뜨리는 조치였다. 고출산이 가난의 늪을 깊게 한다는 판단에 따라 정책방향을 정반대로 틀었다. 피임도구 보급, 정관 시술, 저출산 세제지원 등이 마을 단위까지 파고든다. 취지대로 출산은 급격히 줄어든다. 22년 만인 1983년, 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 수를 이르는 합계출산율이 2.08명을 기록한다.

 인구학에서는 2.1명을 인구대체 출산율이라고 부른다. 조기 사망 등을 고려할 때 인구 피라미드를 유지시키는 수준을 뜻한다. 이를 밑도는 상황이 오게 되자 몇몇 인구학자는 그간의 정책에 회의를 품는다. 하지만 출산억제 정책은 한창 질주 중이었다. 이들의 목소리쯤은 헛간의 모기 소리로 밀어버린다. 10년 뒤 문민정부가 시작된 1993년에야 질주는 멈춘다. 급기야 1996년 출산장려 중심의 신(新)인구정책의 막이 오른다. 당시 출산율은 1.58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때는 늦었다. 별별 출산장려 수단을 동원하지만 우리는 초(超)저출산 국가로 치닫는다. 저출산은 고령화의 뒷면이다. ‘저출산·고령화 속도 세계 1위’는 뉴스도 아니다. 이번 주에도 놀랄 만한 인구통계가 발표됐다. 노인인구 비중이 2000년 7%에서 2018년 14%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프랑스 115년, 미국 71년 걸렸던 변화가 18년 만에 벌어졌는데도 모두 무덤덤하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교훈을 얻기 위해 가끔은 가정을 해 본다. 만약 1983년 그때, 출산율을 유지했다면 미래는…. 실제로 한 연구팀이 통계 프로그램에 넣고 돌려봤다. 2018년 노인인구 비중이 12% 밑으로 떨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실버 쇼크에 대비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었다.

 가족계획 면에서 한국은 중국의 선배다. 대략 20년 시차를 두고 닮은꼴 정책이 나왔다.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은 1980년에 시작된다. 1가구 1자녀가 대표적이다. 둘째를 낳으면 벌금을 물리는 가혹한 수단까지 동원한다. 벌금이 무서워 호적에 올리지 못하는 흑해자(黑孩子·검은 아이)가 넘쳐난다. 하지만 인구 감소라는 목표만큼은 달성한다. 우리가 출산억제 정책을 포기한 1993년, 중국의 출산율은 2.01을 기록한다. 중국 역시 출산율이 인구대체 수준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피임시술을 멈추지 않는다.

 최근 중국은 1가구 1자녀 노선을 사실상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출산율이 1.6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노동인력 감소를 걱정해야 할 판이 됐다. 33년간의 가족계획 정책을 허무는 결정을 했다. 인구 대국(大國)의 둘째 허용에 지구촌이 흔들리고 있다. 식량난 예고에서 군사대국화 우려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육아용품·교육 주식이 오르고 피임 관련 주는 떨어졌다. 이런 전망대로 중국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날까. 우리 사례를 보면, 한번 인구대체 수준 이하로 내려간 출산율은 수십 년이 돼도 회복되지 않는다. 서구사회도 같은 패턴을 보였다. 중국에도 애를 못 낳게 하는 건 쉽지만 낳게 하는 건 어렵다는 속설이 통한다면 인구폭발은 기우가 될 것이다. 중국이 우리처럼 1993년에 실기했는지는 머지않아 숫자로 나타날 것이다.

 살다 보면 우리 앞에는 ‘와해적 조짐’이 출현한다. 대부분은 이를 제때 알아보지 못하는 실수를 범한다. 기존의 판을 뒤집어야 할 상황이 닥쳤는데도 관성대로 질주한다. 시대 탐지능력을 키우려면 1983년 같은 실패사례를 가끔은 호출해야 한다. 그 응답을 토대로 떠오르는 이슈를 잡아채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이규연 논설위원

김정운의 敢言異說, 아니면 말고 '팔굽혀펴기' 열다섯 번이면 다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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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1.22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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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고령화사회 진입한 일본, 孤獨을 당연하게 여겨
외로우면 안되는 '고독저항사회' 한국, 경조사 열심히 챙겨
압축 성장하느라 서양의 '근대적 개인' 경험 못해본 우리…
內面에 대한 더 깊은 省察만이 고독에서 구원해줄 것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사진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오늘도 또 부엌 한구석에 주저앉아 울었다. 외롭거나 서글퍼서가 아니다. 진짜 너무 아파서 울었다. 설거지하다가 그릇을 넣으려고 열어놓은 싱크대 모서리에 머리를 받았기 때문이다. 요즘 자주 그런다. 아주 환장하게 아프다. 눈물이 쪽 빠진다. 부엌 한구석에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 잡고 끙끙대고 있는데, 틀어놓은 TV 아침 방송에서 '고독사(孤獨死)'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여자들의 70%가 죽을 때 주위에 아무도 없을 것 같다는 거였다. 우아하게 혼자 죽는 법에 관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도 했다. 눈물 찔끔대며 부엌에 주저앉아 있으려니 도무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일본 교토, 원룸 차가운 부엌 한 귀퉁이에서 싱크대 모서리 받고 '고독사'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아주 심각하게 잠시 했다.

사실, 일본에서 고독은 아주 자연스럽다. 오십을 넘겨 그림 공부하겠다며 건너온, 나이 든 유학생이 원룸 아파트에서 혼자 밥 해먹고, 혼자 돌아다녀도 하나도 안 불편하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어도 쑥스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고독 순응 사회'다. 고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사회 구석구석에서 느껴진다. 일찌감치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서구 대부분의 나라도 그렇다. 오래 사는 나라에서 고독은 당연한 거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의 고령화 속도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고독'은 아직 낯선 단어다. 고독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에서 고독은 실패한 인생의 특징일 따름이다. 그래서 아직 건강할 때, 그렇게들 죽어라고 남들 경조사에 쫓아다니는 거다. 내 경조사에 외로워 보이면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토록 바쁜 이유는 고독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고독 저항 사회'인 까닭이다. 쉬어야 하는 주말조차 각종 경조사로 길거리가 미어터지는 이 한국적 현상을 달리 설명할 수 있을까?
김정운 그림
김정운 그림
최근 발표된 자료를 보니 남자는 78세, 여자는 85세가 평균 기대 수명이란다. 이제 나 같은 50대는 백 살까지는 충분히 산다. 1950년대 한국 남자의 평균수명은 불과 51.1세, 여자는 53.7세였다. 불과 백 년 사이에 평균수명이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인류 역사상 인간이 이토록 오래 살아본 적이 없다. 그 어떤 자연 변화나 사회변혁도 이 평균수명의 연장과 비교할 수 없다.

평균수명 50세를 기준으로 이제까지 있어온 윤리, 도덕적 기준도 죄다 바뀌게 된다. 여기에는 부부 관계, 가족 관계도 해당한다. '폴리가미'까지는 아닐지라도 수차례 결혼·이혼하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다. 20대에 만난 사람과 백 년 동안 쭉 함께 산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지금의 그 남편과 앞으로 오십 년을 더 살라고 하면, 우리나라 중년 여자 대부분은 차라리 고독사하고 말겠다고 할 거다. '검은 머리, 파뿌리'는 평균수명 50세였던 시절의 전설일 따름이다. 그만큼 평균수명 100세는 엄청난 사건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살게 된 각 개인은 그에 상응하는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바로 고독이다.

사실 고독은 '개인'이 인류 역사에 처음 등장할 때 함께 나타난 현상이다. 데카르트가 '나'라는 주어를 써서 주체의 존재 방식을 '사유'로 규정했을 때를 '근대적 개인의 탄생'으로 볼 수 있다. 이 데카르트적 자아는 고립을 전제로 한다. 세계와 타자로부터 독립된 자아의 확인으로부터 주체가 성립하는 까닭이다. 따라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적 명제를 심리학적으로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나는 고독하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개인 individual'이라는 서구의 존재론이 동양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세기 무렵이었다. 동양은 당황했다. individual에 상응하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 일본의 번역어 성립 과정에 정통한 야나부 아키라(柳文章)에 따르면, individual은 중국어로는 '일개인(一個人)' 또는 '독일개인(獨一個人)' 등과 같은 단어의 조합으로 번역되었고, 일본에서는 일상어인 '사람(ひと)'으로 번역되었다. 개인(個人)이 일상어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일이었다. 독(獨)이나 일(一)이 빠져버린 개인(個人)은 individual의 번역어로 그리 큰 문제가 없었다. 당시 동양의 개인은 고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백 년에 걸친 서구의 근대화를 불과 수십 년 만에 해치운 압축 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고독할 틈도 없었다. 고독은 사치였다. 그러나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고독은 존재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한국과 같은 '고독 저항 사회'에서 고립된 삶은 '호환 마마'보다도 무섭다. 고독에 대처하는 어떠한 문법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금만 보장되면 다 해결되는 줄 안다. 다들 너무나 외로워 어쩔 줄 모르면서, 그야말로 고독에 몸부림치면서도 그게 자기 운명인 줄 모른다는 이야기다.

고독한 개인의 구원은 역설적으로 개인 내면에 대한 더 깊은 성찰로 가능하다. 고독할수록 더 고독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게 예술적 몰입일 수도 있고 종교적 명상일 수도 있다. 아, '팔굽혀펴기'일 수도 있다. 하루에 수백 번씩 팔굽혀펴기를 하면 고독 따위는 아주 쉽게 견딜 수 있다고, 언젠가 목욕탕에서 만난 김창근 SK수펙스 의장이 그랬다. 이제까지 내가 본 어깨 중에 가장 멋있는 역삼각형 어깨를 가진 60 중반의 김 의장은 팔굽혀펴기를 하면 중년의 허접스러운 성욕도 깨끗이 사라지고 정신도 아주 맑아진다고도 했다.

오늘 난 팔굽혀펴기 열다섯 번 만에 고독은 물론, 성욕도 깨끗이 다 해결했다. 난 고작 열다섯 번이면 충분한데, 김 의장은 왜 하루에 수백 번씩 하는 걸까? 아무튼 난 아주 맑은 샘물 같은 영혼을 지녔다.
김정운 | 문화심리학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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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 通 (총 1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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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썸네일
조금 있으면 또 꼴리는데...
이진욱 썸네일
관리자가 (기타) 사유로 100자평을 삭제하였습니다
김정열 썸네일
좋은 글이네요. 성욕은 팔굽혀 펴기 정도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아사 직전에도 꿈에 나타나는 것은, 풍성한 식탁이 아니라, 알몸의 여자이다. 초기 기독교 성자들이 사막에서 마른 빵 한조각, 물 한모금에 의지해서 기도할 때, 대부분의 꿈은 여자라고 기록해 놨다. 음식남녀라고 하지만, 이는 확실한 오류이다. 인간의 뇌는, 파충류의 뇌, 포유류의 뇌, 고등포유류의 뇌로 나뉜다. 사랑, 자비, 인, 고독 등은 포유류의 뇌의 활성화에 기인한다. 파충류의 뇌나 고등포유류의 뇌를 활성화시키면 해결된다. 젊은 이성을 가까이 한다든가, 음식에 집중하든지 등의 파충류적 방법이 있고, 기도, 글쓰기, 독서, 토론 등 고등포유류적 방법이 있다. 사명당 대사의 법명이 예사롭지 않다. 溟이 검은바다 명이다. 사방이 바다인 땅이다. 그 절해고도에서 대오하겠다는 의지이다. 절대 고독이 절대 자유이다. 그리 겁낼 것은 없다..
정종순 썸네일
저는 60대 중반 고독과 성욕보다는 건강관리를 위하여 취침 전 팔귭혀퍼기 25번식 3회, 윗몸 일으키기 30번식 3회, 다리 얼굴까지 올리기 41번식 3회 후 근심과 걱정을 잊고 편안하게 잠을 잔답니다
정희범 썸네일
글이 재밌다. 바로 팔굽혀펴기를 했다.
이근수 썸네일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편안합니다. 단, 하늘과 땅과 나무와 꽃을 보면서 삶의 그윽한 향기를 느낄줄 알아야 겠지요. 원래 인간은 고독한 것이거늘, 우리는 너무 타인의 소음에 익숙해져 있는 것 아닌가요?
이창호 썸네일
50을 넘어 60으로 치닫는 인생의 마디마디 마다 고독은 어찌보면 생활의 반복된 굴레로 되나니 어찌하리오 인생살다가 더러운 인간들에게 이리치고 저리치고 남부럽지 않던 재산을 송두리채 날라가버리고 그래서 차라리 혼자서 인간들을 가까이 하지말고 외롭게 살아가는 것이 마음 편안함을 깊이 깨닫게 되나니 인간은 혼자와서 혼자 가니라.
박장일 썸네일
고독은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정신적 헤이햔상이라고 봅니다. 숨을 쉴수 있다는 사리에 감사하고 아름다운 햇살과 푸른 하늘을 볼수 있음에, 오늘 점심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고독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에 감사할줄 안다면 모두가 두려워하는 고독은 사라질 것입니다~^^
주장희 썸네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한국인들의 특징을 잘 표현해 주셨네요. 일본생활 잘 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한국에서 뵙으면 합니다.
조영준 썸네일
데카르트는 동양의 개인론 ('붓다의 천상천하유아독존')을 배우고 서양에 전파하였지요. 닐스보어의 양자역학이 동양의 음양이론을 배워 나온것처럼.. 팔굽혀피기 많이 하세요. 외로와 보입니다. 글에서 느껴지네요.

재미있는 교통 사인판

  세 상 에 는  참  재 미 있 는  아 이 디 어 들 이  많 지 요. 그 런 데  이 게  실 제  생 활 에 서 는  꼬 이 기 도  합 니 다.  특 히  별 생 각  없 는  경 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인.(비포 앤 애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