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의 시시각각] 임수경을 함부로 욕하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2013.11.25 00:34 / 수정 2013.11.25 09:14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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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90~98년 동안 모조리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남북의 경제격차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벌어진 시기다. 북한은 그 원인을 “사회주의권 붕괴와 자연재해, 미국의 제재”로 꼽는 게 공식 입장이다. 일리 있는 분석이다. 중국은 89년 천안문 사태로 정신이 없었다. 이듬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91년에는 소련이 해체됐다. 북한은 94~97년 가뭄과 홍수로 큰 흉작을 겪었다. 쌀과 옥수수 생산량이 3분의 1 토막 났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93년)로 국제적인 제재도 강화됐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다.
다만 북한이 빠트린 게 하나 있다. 어쩌면 꽁꽁 숨기고 싶은지도 모른다. 김일성에게 88올림픽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여기에 맞바람을 놓은 게 청년학생축전이다. 한겨레신문은 89년 3월 15일 평양을 방문한 재미언론인 안동일씨를 인용해 이렇게 보도했다. “서울올림픽이 성대하게 치러진 것에 자극받아 청년학생축전에 국가적인 역량을 총동원했다. …표면적 경비(직접경비)만도 47억 달러를 투입했다. 평양 광복거리의 8㎞ 구간 양쪽에는 12층에서 22층의 고층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모두 3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북한이 쏟아부은 47억 달러는 서울올림픽의 총투자비 2조3826억원(당시 환율로 35억 달러)을 훨씬 웃도는 규모다. 체면을 차리느라 불필요한 전시성 사업에 재정을 탕진한 것이다. 그 대가는 값비쌌다. 남한은 올림픽을 치른 뒤 9년 만에 경제규모가 갑절이나 커졌다. 북한은 9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으로 곤두박질했다. 재정이 파탄 나는 바람에 외부에서 밀어닥친 동구권 붕괴와 국제 제재 쓰나미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사진 속에는 김일성이 임수경의 양팔을 껴안으며 환하게 웃는다. 하지만 북한의 쓰라린 패착이 사진의 본질이다. 남북 간 체제경쟁의 종말을 고하는 역사적 장면이나 다름없다.
남북관계도 긴 호흡으로 볼 필요가 있다. 남북교류가 꽉 막힌 지금, 멀리 내다본다면 탈북자 정착에 관심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2만5000명이 넘는 탈북자 가운데 상당수가 북한에 남은 가족들에게 송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과거 재일교포가 송금한 돈을 ‘후지산 줄기’라 했는데, 요즘은 한국에서 들어가는 돈을 ‘한라산 줄기’라 부른다”고 했다. 적지 않은 탈북자가 중국 휴대전화로 북한의 친척과 은밀히 통화하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문제는 대화 내용이다. 탈북자 단체들에 따르면 주로 “남한은 돈 벌기는 좋아도 사람 살기는 힘들다”는 이야기가 오간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차별이 묻어난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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