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5일 월요일

[이철호의 시시각각] 임수경을 함부로 욕하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2013.11.25 00:34 / 수정 2013.11.25 09:14
이철호
논설위원
그 사진이 또 말썽이다. 1989년7월 평양의 ‘세계청년학생축전’ 사진 이야기다. 밀입북한 임수경 민주당 의원(당시 외국어대 4년·이하 경칭 생략)이 김일성과 다정하게 손을 맞잡는 광경이다. 이번엔 임수경이 과연 김일성에게 ‘아버지’라 불렀는지가 관전포인트였다. 법원은 “실제로 그런 호칭을 썼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며 임수경에게 패소판결을 내렸다. 이 사진은 오랫동안 진영논리를 가르는 경계선이었다. 진보진영은 ‘남북화해’의 상징으로 떠받들고, 보수 쪽은 ‘종북’이라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진실에 다가서려면 사진의 이면을 읽는 힘이 필요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90~98년 동안 모조리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남북의 경제격차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벌어진 시기다. 북한은 그 원인을 “사회주의권 붕괴와 자연재해, 미국의 제재”로 꼽는 게 공식 입장이다. 일리 있는 분석이다. 중국은 89년 천안문 사태로 정신이 없었다. 이듬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91년에는 소련이 해체됐다. 북한은 94~97년 가뭄과 홍수로 큰 흉작을 겪었다. 쌀과 옥수수 생산량이 3분의 1 토막 났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93년)로 국제적인 제재도 강화됐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다.

 다만 북한이 빠트린 게 하나 있다. 어쩌면 꽁꽁 숨기고 싶은지도 모른다. 김일성에게 88올림픽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여기에 맞바람을 놓은 게 청년학생축전이다. 한겨레신문은 89년 3월 15일 평양을 방문한 재미언론인 안동일씨를 인용해 이렇게 보도했다. “서울올림픽이 성대하게 치러진 것에 자극받아 청년학생축전에 국가적인 역량을 총동원했다. …표면적 경비(직접경비)만도 47억 달러를 투입했다. 평양 광복거리의 8㎞ 구간 양쪽에는 12층에서 22층의 고층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모두 3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북한이 쏟아부은 47억 달러는 서울올림픽의 총투자비 2조3826억원(당시 환율로 35억 달러)을 훨씬 웃도는 규모다. 체면을 차리느라 불필요한 전시성 사업에 재정을 탕진한 것이다. 그 대가는 값비쌌다. 남한은 올림픽을 치른 뒤 9년 만에 경제규모가 갑절이나 커졌다. 북한은 9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으로 곤두박질했다. 재정이 파탄 나는 바람에 외부에서 밀어닥친 동구권 붕괴와 국제 제재 쓰나미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사진 속에는 김일성이 임수경의 양팔을 껴안으며 환하게 웃는다. 하지만 북한의 쓰라린 패착이 사진의 본질이다. 남북 간 체제경쟁의 종말을 고하는 역사적 장면이나 다름없다.

 남북관계도 긴 호흡으로 볼 필요가 있다. 남북교류가 꽉 막힌 지금, 멀리 내다본다면 탈북자 정착에 관심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2만5000명이 넘는 탈북자 가운데 상당수가 북한에 남은 가족들에게 송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과거 재일교포가 송금한 돈을 ‘후지산 줄기’라 했는데, 요즘은 한국에서 들어가는 돈을 ‘한라산 줄기’라 부른다”고 했다. 적지 않은 탈북자가 중국 휴대전화로 북한의 친척과 은밀히 통화하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문제는 대화 내용이다. 탈북자 단체들에 따르면 주로 “남한은 돈 벌기는 좋아도 사람 살기는 힘들다”는 이야기가 오간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차별이 묻어난다.

독일 통일도 먼저 동독 의회가 자진해 서독과 합병하기로 결의했기에 가능했다. 과연 급변 사태가 일어나면 북한 주민들은 남한과 통일을 원할까, 아니면 중국이 내미는 손을 잡을까. 누구도 자신하기 어렵다. 목숨이 걸린 선택 앞에선 확실한 정보만 믿기 마련이다. “사람 살기가 어렵다”는 입소문을 듣고 누가 선뜻 남한으로 기울겠는가. 탈북자 출신의 국회의원을 넘어 더 많은 성공 스토리가 쏟아졌으면 한다. 북한 학력을 인정받아 줄줄이 의사가 탄생하고, 서울대 로스쿨에 탈북자 2명이 합격했다는 소식이 반갑기 그지없다. 탈북자들의 ‘코리안 드림’만큼 생생한 증거는 없다. 그들을 통해 돈과 휴대전화 통화가 오가는 시대가 아닌가.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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