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서 '개교 67주년, 개학 118주년'이란 구호가 등장한 이유
- 양승식
- 사회부 기자
- E-mail : yangsshik@chosun.com
-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역사는 늘리고 싶고, 경성제대 역사는 빼고 싶은 마음에…
‘개교(開校) 67주년, 개학(開學) 118주년’
최근 서울대 각종 행사에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구호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대 관계자는 “학교는 1946년에 열고, 학문은 1895년부터 시작됐다는 얘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애매모호한 설명은 대체 무슨 뜻일까요?
서울대는 1946년 미 군정이 ‘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을 공포하면서 공식적으로 ‘서울대’라는 명칭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정식 개교 연도가 1946년이고, 서울대는 올해로 개교 67주년을 맞은 겁니다.
하지만 다른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서울대 연원은 1946년 생긴 종합대학이 아닌 1895년 문을 연 법관양성소”라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서울대가 1946년 당시 10개 기관을 합쳐 만든 종합대학이라는 데서 출발합니다. 경성제국대학, 법관양성소, 농상공학교 등 10개 기관의 연합으로 서울대가 탄생했고, 이 중 가장 오래된 법관양성소가 설립된 1895년이 서울대 개교 원년이라는 논리입니다. 법관양성소는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개설한 최초의 근대식 법학 고등교육 기관입니다.
최근 서울대 각종 행사에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구호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대 관계자는 “학교는 1946년에 열고, 학문은 1895년부터 시작됐다는 얘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애매모호한 설명은 대체 무슨 뜻일까요?
서울대는 1946년 미 군정이 ‘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을 공포하면서 공식적으로 ‘서울대’라는 명칭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정식 개교 연도가 1946년이고, 서울대는 올해로 개교 67주년을 맞은 겁니다.
하지만 다른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서울대 연원은 1946년 생긴 종합대학이 아닌 1895년 문을 연 법관양성소”라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서울대가 1946년 당시 10개 기관을 합쳐 만든 종합대학이라는 데서 출발합니다. 경성제국대학, 법관양성소, 농상공학교 등 10개 기관의 연합으로 서울대가 탄생했고, 이 중 가장 오래된 법관양성소가 설립된 1895년이 서울대 개교 원년이라는 논리입니다. 법관양성소는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개설한 최초의 근대식 법학 고등교육 기관입니다.
- 1946년 개교 당시 서울 종로구 동숭동 서울대의 모습. 경성제대 시절의 건물을 상당수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 제공
문제는 ‘경성제대’
경성제대는 1924년 일왕 칙령에 의해 설립된 대학으로 일제(日帝)의 잔재로 취급됐습니다. 서울대가 경성제대 그늘을 벗어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학문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서울대 인문·사회·자연대의 주요 과들은 경성제국 대학에 전신을 두고 있습니다. 1946년 국립 서울대학교라는 공식 명칭으로 개교했을 때도 경성제대의 서울 종로구 동숭동 건물을 대학본부 등 주요 시설 입주에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인문대를 중심으로 한 서울대 교수들은 그동안 일제의 고리를 끊어버리기 위해 1946년 이전 서울대의 전신(前身)을 철저히 부정했습니다. 일제와 연관된 서울대의 과거는 ‘없어져야 할 것’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학생들도 “경성제대를 서울대의 과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1895년 서울대 개교설을 받아들이면 경성제대를 서울대 전신으로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절대 부정해야 할 존재’를 서울대 역사의 일부로 인정하게 되는 겁니다.
“경성제대는 일부 역사에 불과…우리도 역사 좀 늘리자”
하지만 1895년 개교설을 주장하는 교수들은 “1946년 설립된 서울대는 경성제대뿐만 아니라, 법관양성소, 농상공학교 등 10개 기관의 연합체로 구성된 종합대학으로 경성제대는 서울대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007년 서울대 대외협력본부 부본부장을 맡아 외국에 서울대를 소개할 기회가 많았던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는 “수백 년 역사를 지닌 외국 대학의 사람들에게 서울대가 개교한 지 60년을 조금 넘었다는 안내 자료를 주다 보면 면이 안 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조 교수는 “경성제대가 우리 속에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그걸 경계해야 하는 건 분명하다”면서 “하지만 그게 부끄러운 뿌리라면, 나머지는 자랑스러운 뿌리”라고 했습니다. 서울대 역사의 일부가 일제에서 왔다는 어쩔 수 없는 사실은 인정한 것입니다.
- 작년 4월 25일 서울대 법대 앞에 세워진 이준 열사 동상. 이준 열사는 '서울대 1895년 개교설'의 연원인 법관양성소 1기 졸업생이다. 이날 제막식에는 전·현직 법조계 주요인사와 서울대 오연천 총장이 참가했다. /서울대 제공
“차라리 고구려 태학 설립 시기를 원년이라고 해라”
1895년 개교론자들의 이야기가 터무니없는 건 아닙니다. 연세대는 1957년 연희대와 세브란스의대가 통합해 지금의 모습이 됐지만, 1884년 고종의 명으로 세워진 제중원(濟衆院)을 뿌리라고 밝힙니다. 세계 유수의 대학인 미국의 하버드대도 1636년 교사 1명에 학생 9명으로 시작한 ‘목사 양성소’를 개교 원년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서울대 교수와 학생들은 ‘서울대 1895년 개교’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한 인문대 교수는 “그렇게 깊이 뿌리를 찾고 싶으면, 고구려 태학 설립시기를 원년이라고 주장하면 될 거 아니냐”면서 “왜 굳이 일제 잔재를 우리 역사에 포함시키려 하느냐”고 격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서울대 졸업생 박모(30)씨도 “경성제대를 공식적으로 서울대 역사에 넣자는 것인데, 이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결국 서울대 역사는 늘리고 싶고, 그러나 경성제대 역사는 빼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표현이 ‘개교 67주년, 개학 118주년’입니다. 일종의 어정쩡한 타협안인 셈입니다. 서울대 관계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 입장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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