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2일 목요일

  • "교수와 술 한번 마셨다고 감격해 운 학생…서울대 이래도 되나?"

  • 양승식
    사회부 기자
    E-mail : yangsshik@chosun.com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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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데이
입력 : 2013.11.0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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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된 서울대 교수들 첫 익명커뮤니티 들어가 봤더니…

지난 9월 서울대 교수들의 익명 커뮤니티가 카페 형태로 개설됐습니다. 서울대 개교 이래 처음으로 교수들이 만든 익명의 공간입니다. 아이디 ‘몽당연필’을 사용하는 서울대 교수는 당시 “서울대에 여러 해 근무하면서 도대체 학교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답답했다”며 커뮤니티 개설 취지를 밝혔습니다.

커뮤니티 개설 후 2개월, 서울대에선 익명 커뮤니티를 두고 여러 말이 오갔습니다. 서울대 본부 측의 반응은 민감했습니다. 한 서울대 관계자는 “익명 커뮤니티 존재가 조선일보를 통해 알려진 뒤, 본부 내부 회의에서 여러 말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찾아내야 한다” “커뮤니티를 만든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반응부터 “이걸 그냥 놔두며 안 되지 않겠느냐”라는 격한 성토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본부는 개설자가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했고, 커뮤니티에는 계속 글이 올라왔습니다. 개설자 ‘몽당연필’은 지난달 중순 글을 올리며 “44명의 교수가 회원으로 가입했고, 70여명이 구독하고, 또 1000명 정도에게 간헐적으로 올라온 글을 발송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거절하신 분은 모두 7명이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익명 커뮤니티에 가입한 교수 회원은 58명. 대학본부의 의심 어린 눈초리에도 꾸준히 돌아가는 이 커뮤니티엔 지난 두 달 사이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커뮤니티에는 자성의 목소리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한 교수는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어느 맥줏집에서 학생들과 술을 마시는 인문대 교수님을 만났다. 학생 중 한 명이 눈물을 흘리고 있어 놀라 물어보니 ‘경영대학을 3년간 다녔지만 교수님하고 이렇게 앉아서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없었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니 감격스럽고 지난 세월이 야속했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어디 경영대뿐일까? 대부분 대학이 마찬가지가 아닐까?”


“학생 입장에서 교수들은 교회 전도사로 보일 것”

그는 “서울대의 학부 교육 방치는 1980년대 후반부터 있었다”면서 “졸업생 중 70~80%가 공직으로 가거나 기업체에 들어가서, 아니면 의사나 변호사가 되어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세상인데, 교수들은 그런 학생은 보지 않고 대학원생만 예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교수들은 교회 전도사로 보일 것이다. 내 전공을 공부하라고 떠드는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라며 신랄한 비판을 했습니다.

학과별 모집으로 회귀하려는 서울대 여러 학과의 모습에 대해 “경성제국 대학 시절 물려받은, 외향을 넓히기만 하려는 태도”라고 비판한 교수도 있었습니다. 기존 학과 체제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학과를 추가하다보니, 학과 구조조정은 되지 않고 학생 숫자만 늘어나는 현실을 비판한 겁니다.

한 교수는 서울대 관악캠퍼스의 난개발이 교수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캠퍼스 난개발의 주역은 다름 아닌 우리 교수들”이라면서 “교수들이 정부에 인맥으로 로비를 벌여 너도나도 예산을 약속받아 건물을 지어댔다”고 했습니다. “우선순위 35위인 사업이 3위인 사업을 밀어내는 사례도 수두룩했다”고도 했습니다.

‘힘 있는’ 몇몇 단과대학에 대한 불만도 나와

몇몇 ‘힘있는’ 단과대학의 행동에 불만을 제기한 교수들도 있었습니다. 한 서울대 교수는 “최근 법대에 학사과정을 둘 수 있게 하는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돼 학교 내에서 의견 조회 절차를 밟고 있다”면서 “법대 교수들이 국회의원을 내세워 발의한 것이며, 힘 있는 대학의 ‘멋대로 하기’ 전형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른 주요 단과대학인 의과 대학을 향해선 “공룡이 덩치를 키우려는 조짐이 보인다”면서 “의대가 기금교수 100여명을 법인 교수로 전환시킨 뒤 또 교수 증원을 한다는 소문이 도는데, 늘어날 숫자가 지닐 강력한 힘이 어디까지 갈지 모를 정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소위 ‘메이저’ 학과인 법대와 의대의 행보에 대해 많은 교수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듯합니다.
"교수와 술 한번 마셨다고 감격해 운 학생…서울대 이래도 되나?"
교수, 명예로만 살기 어렵다

“서울대 교수들은 명예를 먹고 산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살아가는 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많은 교수가 연봉과 관련해 올린 글에서 그 일단(一端)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 교수는 “봉급 3000만원을 올려준다던 오연천 총장은 인상을 못 한다면 못 한다고 밝혀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했고, “어차피 서울대가 정부로부터 예산을 통으로 받지 않는 이상 연봉 인상 문제는 마음을 비워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는 교수도 있었습니다. 학자도 ‘돈’ 문제에서 만큼은 초연함을 보이기 어려운 듯합니다.

대학 내 정치적 이슈와 관련된 글도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 중 ‘핫이슈’는 역시 내년으로 다가온 서울대 법인 두 번째 총장 선출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교수들은 차기 총장이 갖춰야 할 조건을 거론하기도 했고, 실제 후보로 거론되는 교수들의 하마평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한 교수는 여러 교수들이 올린 총장의 조건을 읽고 나서 이런 총평을 남겼습니다. “우리 총장은 만능선수라야 하고, 60대보다 젊어야 하고, 그리고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 이런 분을 찾을 수 있을까요?”

서울대 익명 커뮤니티는 어느새 교수들 사이의 ‘핫이슈’를 전달하는 창구가 돼 버렸습니다. 비록 ‘점잖은’ 서울대 교수들이 복잡한 가입 절차를 극복하며 무더기로 커뮤니티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오고 교수들의 이메일에 이 글이 전달되는 다음날이면 삼삼오오 모여 ‘서울대 최초 익명 커뮤니티’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보입니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익명 커뮤니티 개설이 서울대의 불통 문제를 보여준 단면이라는데 공감합니다. “그만큼 총장과 대학 본부를 비롯한 의사 결정권자들이 소통을 제대로 못 했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잘한다면 이런 게 생길 리도, 또 사람들이 호응할 리도 없겠죠.” 한 인문대 교수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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